UNIT 5-1
17세기 전후 동아시아의 전쟁과 질서의 재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으로 시작된 임진전쟁은 조선·명·일본이 모두 참여한 국제 전쟁이었어요. 전쟁 뒤 일본에는 에도 막부가 서고, 약해진 명의 틈에서 후금(청)이 일어나 조선을 두 차례 침입하고 마침내 중국을 차지했어요. 동아시아의 질서와 사람들의 생각이 크게 바뀌었어요.
이 단원을 마치면
- 임진전쟁의 원인과 전개, 국제 전쟁으로서의 성격을 설명한다.
- 전쟁 뒤 일본·명·조선의 변화와 후금(청)의 성장, 호란을 설명한다.
- 명·청 교체 뒤 동아시아 각국의 대외 관계와 인식 변화를 설명한다.
임진전쟁 — 동아시아의 국제 전쟁
이 개념 문제 8개 풀기 →1590 · 르네상스와 신항로 개척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본 통일정치
통일 과정에서 조총이 큰 역할을 했다. 히데요시는 조선에 '명으로 가는 길을 빌려 달라'(정명가도)고 요구했고, 조선은 이를 거부했다.
📍 교토
1592~1598 · 왜란과 호란
임진왜란전쟁·외교
왜란으로 인구와 경작지가 크게 줄고 토지 대장·호적이 불타 국가 재정이 흔들렸다. 명은 원군 파견으로 국력이 약해졌고, 일본에서는 도쿠가와 막부가 들어섰다. 조선의 활자·도자기·서적이 일본에 전해졌다.
📍 부산진(부산), 탄금대(충주), 한양(지금의 서울), 의주 · 👤 선조, 이순신
1592~1593 · 왜란과 호란
의병의 활약전쟁·외교 · 사회
의병장은 대부분 향촌의 사림이었다. 의병 활동은 성리학의 충의 정신과 향촌 공동체의 결속을 보여 주며, 전쟁이 길어지자 관군에 편입되어 전력을 보탰다. 수군의 승리와 함께 일본군의 보급로를 끊어 전쟁의 흐름을 바꾸었다.
👤 곽재우
1597~1598 · 왜란과 호란
정유재란과 명량 대첩전쟁·외교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무너진 직후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이 다시 지휘를 맡았다. 도요토미의 죽음으로 일본군이 물러나며 7년 전쟁이 끝났다.
📍 명량(해남·진도 사이 울돌목) · 👤 이순신
17세기 전후 동아시아의 전쟁
임진전쟁이 조선·명·일본 각각에 남긴 정치적 변화를 정리하고, 이 전쟁을 '국제 전쟁'으로 보는 까닭을 설명해 보자.
임진전쟁에 조선·명·일본이 각각 어떤 목적으로 참여했는지 정리해 보세요.
▸ 풀이 보기
일본: 히데요시는 통일 뒤 남은 무사들의 힘을 밖으로 돌리고 명을 정복하겠다며(정명가도) 조선을 침략했어요. 조선: 나라를 지키기 위해 관군·수군·의병이 맞서 싸웠어요. 명: 조선이 무너지면 일본군이 명 본토로 들어올 수 있으므로, 자기 나라를 지키고 조공국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원군을 보냈어요.
움직이는 지도로 보는 17세기 전후 동아시아
단순 세계 지도 — 해안선은 Natural Earth 자료를 줄인 것이고, 나라의 경계는 대략의 모양이에요. 네모는 도읍, 동그라미는 사건이에요(색 = 주제).
해 볼 것 · 보는 범위를 '동아시아'로 바꾸고 연표 띠를 1590년부터 끌어 보세요. 1592년 한반도, 1603년 에도, 1616년 후금, 1636년 병자호란, 1644년 베이징의 변화를 찾아보세요.
| 전쟁 뒤의 변화 | |
|---|---|
| 조선 | 인구 감소와 농토 황폐, 토지 대장·호적 소실 → 재정 개혁(대동법), 공명첩 발행으로 신분 질서 동요 |
| 일본 | 도요토미 정권 붕괴 → 에도 막부(1603), 끌려간 도공이 도자기 산업을, 약탈한 서적·활자가 성리학·출판을 발전시킴 |
| 명 | 막대한 전쟁 비용으로 재정 악화 → 농민 반란과 후금의 성장 |
| 여진 | 명·조선의 관심이 쏠린 틈에 누르하치가 통합 → 후금(1616) |
후금(청)의 성장과 호란
이 개념 문제 9개 풀기 →1616 · 절대 왕정과 아시아의 제국
후금의 건국정치
팔기제로 여진을 군사·행정 조직으로 묶었다. 1619년 사르후 전투에서 명·조선 연합군을 이기고 요동을 장악하며 명을 위협했다.
1608~1623 · 왜란과 호란
광해군의 중립 외교정치 · 전쟁·외교
명의 요청으로 강홍립을 보냈으나 형세를 보아 후금에 항복하게 했다(1619 사르후 전투). 서인은 이를 명에 대한 의리를 저버린 것이라 비판했고, 인조반정의 명분이 되었다.
👤 광해군
1627 · 왜란과 호란
정묘호란전쟁·외교
정봉수·이립 등 의병이 후금군의 후방을 위협했다. 후금은 명과의 전쟁을 앞두고 배후를 안정시키려 서둘러 화의를 맺었다.
1636~1637 · 왜란과 호란
병자호란전쟁·외교
조정은 화의를 주장한 최명길(주화론)과 끝까지 싸우자는 김상헌(척화론)으로 갈렸다. 항복 뒤 조선은 청과 군신 관계를 맺고 명과의 관계를 끊었으며, 막대한 공물을 바쳤다.
📍 남한산성(광주), 삼전도(서울 송파) · 👤 인조
광해군의 중립 외교와 인조 정권의 친명배금 정책을 비교하고, 그 결과를 쓰세요.
▸ 풀이 보기
광해군은 명의 요청으로 군대를 보내면서도(사르후 전투) 형세를 보아 후금에 항복하게 해 두 나라 사이에서 실리를 지키려 했어요. 인조반정(1623)으로 들어선 정권은 명을 높이고 후금을 멀리하는 친명배금 정책을 폈고, 그 결과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을 겪어 청과 군신 관계를 맺게 되었어요(삼전도의 굴욕).
명·청 교체 뒤의 동아시아
이 개념 문제 13개 풀기 →1603 · 절대 왕정과 아시아의 제국
일본 에도 막부정치
에도 막부는 쇄국 정책을 펴면서도 나가사키에서 네덜란드와 교역해 서양 학문(난학)을 받아들였다. 이는 19세기 일본의 빠른 근대화의 밑바탕이 되었다.
📍 에도(도쿄)
1607~1811 · 왜란과 호란
조선 통신사경제·교류 · 문화·사상
1609년 기유약조로 부산포에서 제한된 무역이 다시 열렸다. 통신사 행렬은 일본 각지에서 큰 환영을 받았고, 양국 지식인이 시와 글을 주고받았다.
1644 · 절대 왕정과 아시아의 제국
청의 중국 지배정치
청은 만주족 지배를 유지하면서 한족의 제도와 학문을 받아들였다. 18세기에 청의 문물이 번성하자 조선에서는 청의 문물을 배우자는 북학론이 나타났다.
📍 베이징
1649~1659 · 체제 재정비와 탕평
북벌 운동정치 · 전쟁·외교
북벌론은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으려는 명분이자 서인 정권의 정당성을 지키는 이념이었다. 청의 요청으로 조총 부대를 보내 러시아를 친 나선 정벌(1654·1658)이 오히려 실제 전투였다.
👤 효종
1639 · 절대 왕정과 아시아의 제국
에도 막부의 쇄국과 나가사키정치 · 경제·교류
에도 막부는 크리스트교 확산을 막으려 포르투갈 배의 입항을 금지하고, 서양과는 나가사키 데지마에서 네덜란드와만 교역했다. 조선(쓰시마), 류큐(사쓰마), 아이누(마쓰마에)와의 관계는 따로 창구를 두어 이어 갔다.
📍 나가사키
1662~1795 · 절대 왕정과 아시아의 제국
청의 전성기(강희제·옹정제·건륭제)정치 · 문화·사상
『사고전서』 편찬 같은 문화 사업과 문자의 옥 같은 사상 통제를 함께 폈다. 서양과의 무역은 광저우 한 곳으로 제한했다(공행 무역).
📍 베이징 · 👤 강희제
명·청 교체 뒤 조선·일본·베트남(대월)은 청을 각각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쓰세요.
▸ 풀이 보기
조선: 청에 조공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명을 높이고 조선이 중화의 문화를 잇는다는 소중화 의식을 가졌고, 북벌론이 일었다가 18세기에 북학론으로 바뀌었어요. 일본: 청과 공식 국교를 맺지 않고 나가사키에서 중국 상인과만 무역하며, 일본을 중심에 두는 생각(일본형 화이 의식)이 커졌어요. 대월: 청에 조공하면서도 안으로는 황제를 칭하고 스스로를 '중국(중화)'으로 여기는 의식을 가졌어요.
17~19세기 조선이 일본에 보낸 통신사가 가진 외교적 의미와 문화적 의미를 하나씩 쓰세요.
▸ 풀이 보기
외교적 의미: 임진전쟁 뒤 끊긴 국교를 다시 열고(기유약조 1609), 쇼군이 바뀔 때마다 축하 사절을 보내 두 나라의 평화를 확인했어요. 문화적 의미: 통신사 일행의 학자·화원과 일본 지식인이 시문과 그림을 주고받아, 조선의 학문과 문화가 일본에 전해지는 문화 교류의 통로가 되었어요.
명·청 교체기 정성공이 타이완에 근거지를 세운 일이 동아시아 해역에 준 의미를 쓰세요.
▸ 풀이 보기
정성공은 명을 다시 세우겠다며 네덜란드 세력을 몰아내고 타이완을 근거지로 청에 맞섰어요. 청은 이를 막으려 바닷가 주민을 내륙으로 옮기는 천계령을 내렸고, 1683년 타이완을 차지한 뒤 해금을 풀어 민간 무역을 허용했어요. 바다를 둘러싼 명·청 교체의 마지막 국면이에요.
임진전쟁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과 약탈된 서적·활자가 일본에 끼친 영향을 쓰고, 이를 역사적으로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생각해 보세요.
▸ 풀이 보기
이삼평 같은 조선 도공이 아리타 자기를 열어 일본의 도자기 산업이 크게 발전했고, 약탈된 조선의 서적과 활자는 에도 시대 성리학과 출판 문화의 발전에 쓰였어요. 다만 이는 강제로 끌려가고 빼앗긴 결과였으므로, '문화 교류'라고만 부르기보다 전쟁 피해와 함께 기억해야 해요.
- 임진전쟁(1592~1598) = 조선·명·일본의 국제 전쟁. 정유재란(1597), 명량 대첩.
- 전쟁 뒤 일본 = 에도 막부(1603), 조선과 기유약조(1609)·통신사. 명 = 재정 악화 → 후금 성장.
- 후금 = 누르하치(1616), 팔기제 → 사르후 전투(1619) → 정묘호란(1627) → 국호 청(1636) → 병자호란(1636) → 베이징 입성(1644).
- 광해군 = 중립 외교 ↔ 인조 = 친명배금.
- 명·청 교체 뒤 조선 = 소중화·북벌론 → 18세기 북학론. 일본 = 청과 국교 없이 나가사키 무역.
한 장 요약
한 장 요약
- 일본을 통일한 히데요시가 정명가도를 내세워 조선을 침략하자, 조선·명·일본이 모두 참여한 임진전쟁(1592~1598)이 벌어졌어요.
- 전쟁 뒤 일본에는 에도 막부(1603)가 들어서 조선과 국교를 다시 열고 통신사를 맞았으며, 조선 도공과 서적은 일본 문화에 영향을 주었어요.
- 명이 약해진 틈에 누르하치가 후금(1616)을 세웠고, 조선은 광해군의 중립 외교 뒤 친명배금 정책으로 정묘·병자호란을 겪었어요.
- 청이 베이징에 들어가(1644) 중국을 다스리며 명·청 교체가 이루어졌어요.
- 조선은 소중화 의식과 북벌론을, 일본은 쇄국 속 나가사키 무역과 독자적 세계관을, 대월은 외왕내제를 이어 가며 새 질서에 적응했어요.
교육과정 · 2022 개정 고등학교 동아시아사 '동아시아의 사회 변동과 문화 교류' (성취기준 번호는 교육과정 원문 대조 전이라 적지 않음) · 역사 DB(content/history) 고등 층 · 세계사 시대 w-voyages · w-absolutism
Practice
문제 풀기 30문제
임진전쟁이 시작된 해는?
답년일본을 통일하고 '명으로 가는 길을 빌려 달라'며 조선을 침략한 사람은?
1616년 후금을 세운 사람은?
1636년 청이 조선을 침입해 인조가 삼전도에서 항복한 전쟁은?
임진전쟁 뒤 조선이 일본에 보낸 외교 사절은?
에도 막부가 쇄국 속에서도 네덜란드·중국 상인과 무역한 항구는?
임진전쟁에 명이 군대를 보낸 까닭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임진전쟁 뒤 일본에서 일어난 변화는?
임진전쟁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이 일본에 끼친 영향은?
누르하치가 여진을 묶은 군사·행정 조직은?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편 조선의 왕은?
인조반정 뒤 조선 정권이 편 외교 정책은?
청이 베이징에 들어가 중국을 다스리기 시작한 해는?
명·청 교체 뒤 조선에서 청을 치자는 주장은?
임진전쟁 뒤 조선과 에도 막부가 국교를 다시 열며 맺은 약조는?
청과 러시아가 1689년 국경을 정한 조약은?
임진전쟁을 '동아시아 국제 전쟁'으로 보는 근거로 가장 알맞은 것은?
임진전쟁이 명에 끼친 영향으로 옳은 것은?
광해군의 중립 외교와 인조 정권의 외교를 비교한 것으로 옳은 것은?
명·청 교체 뒤 조선 지식인의 인식으로 옳은 것은?
통신사의 의미로 옳지 않은 것은?
청이 타이완을 차지한 뒤(1683) 바꾼 대외 정책은?
임진전쟁 뒤 조선·일본·명 각국의 변화를 하나씩 쓰고, 이 전쟁을 국제 전쟁이라 부르는 까닭을 정리하세요.
명·청 교체 뒤 조선·일본·대월이 청을 바라본 시각을 비교해 서술하세요.
다음 일을 일어난 순서대로 놓은 것은? (가) 정묘호란 (나) 에도 막부 성립 (다) 청의 베이징 입성 (라) 후금 건국
다음 연표의 (가)~(라) 가운데 조선 통신사가 처음 파견된 무렵(1607)이 들어갈 시기는? — 1592 임진전쟁 (가) 1603 에도 막부 (나) 1616 후금 건국 (다) 1636 병자호란 (라) 1644 청의 베이징 입성
전쟁과 그 결과를 바르게 짝지은 것은?
18세기 청의 발달한 문물을 배우자고 주장한 조선의 흐름은?
다음 외교를 편 왕의 시기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 명의 요청으로 군대를 보내면서도 장수에게 형세를 보아 행동하라고 일렀고, 군대는 후금에 항복해 조선의 사정을 알렸다.
17세기 동아시아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만을 있는 대로 고른 것은? (ㄱ. 에도 막부는 조선과 국교를 다시 열었다. ㄴ. 청은 병자호란으로 조선과 군신 관계를 맺었다. ㄷ. 명은 임진전쟁 뒤 국력이 더욱 강해졌다. ㄹ. 청은 네르친스크 조약으로 러시아와 국경을 정했다.)
이 단원에 대한 댓글
가입·로그인하면 댓글을 쓸 수 있어요.
만든 판
지금 기본 판2026 · Claude Opus 5.5 판
고등동아시아사#2026#claude-opus-5.5
- 만든 도구
- Claude
- 모델
- claude-opus-5-5
- 만든 날
- 2026-10-16
- 다시 읽고 확인
- 아직이에요
이 단원이 좋았다면
하트는 한 번, 별은 여러 번 누를 수 있어요.
친구에게 나누기
/notes/h-east-asian-history/ea-war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