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T 5-3
조선 후기의 문화와 개항으로 가는 길
성리학이 현실 문제를 풀지 못한다고 본 실학자들은 토지 개혁과 상공업 진흥을 내세웠고, 서민들은 판소리·탈놀이·한글 소설·풍속화로 자기 문화를 꽃피웠어요. 19세기 중엽 서양 세력이 다가오자 흥선 대원군은 문을 닫아걸었지만, 1876년 조선은 강화도 조약으로 문을 열었어요.
이 단원을 마치면
- 실학의 등장 배경과 중농학파·중상학파의 주장을 비교한다.
- 조선 후기 서민 문화가 발달한 까닭과 그 모습을 설명한다.
- 흥선 대원군의 개혁과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평가한다.
- 강화도 조약의 내용과 성격(불평등 조약)을 사료로 설명한다.
실학과 새로운 학문
이 개념 문제 9개 풀기 →실학 — 실생활에 쓰이는 학문
단서 — 이것을 보면
- 🔎 정약용의 거중기
- 🔎 『목민심서』
- 🔎 박지원의 『열하일기』
- 🔎 『북학의』
중농학파와 중상학파의 주장을 비교하고, 두 학파가 공통으로 바란 것을 말해 보자.
성취기준 [6사05-02] [9역12-02] [10한사1-02-04]
| 중농학파(경세치용) | 중상학파(이용후생, 북학파) | |
|---|---|---|
| 학자 | 유형원, 이익, 정약용 | 유수원,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
| 주장 | 토지를 고루 나누어 자영농을 키우자 | 상공업을 일으키고 청의 문물을 배우자 |
| 대표 저술 | 『반계수록』, 『성호사설』, 『목민심서』 | 『열하일기』, 『북학의』 |
중농학파와 중상학파는 해결책은 달랐지만 같은 목표를 갖고 있었어요. 무엇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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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의 생활을 실제로 나아지게 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것이에요. 둘 다 성리학의 공리공론을 비판하고 현실 문제를 해결하려 했어요.
실학자들은 우리 역사·지리·말에도 관심을 가졌어요(국학). 안정복의 『동사강목』, 유득공의 『발해고』, 이중환의 『택리지』가 이때 나왔어요.
1861 · 세도 정치와 사회 변동
「대동여지도」문화·사상
김정호가 만든 전국 지도로, 10리마다 눈금을 표시해 거리를 알 수 있게 했다. 산줄기·물줄기·도로·고을을 기호로 나타냈고, 목판으로 찍어 널리 보급할 수 있었다. 22첩으로 나누어 들고 다니기 편했다.
👤 김정호
서민 문화와 예술
이 개념 문제 7개 풀기 →조선 후기 서민 문화
단서 — 이것을 보면
- 🔎 김홍도의 「씨름」
- 🔎 신윤복의 「단오풍정」
- 🔎 판소리 「춘향가」
- 🔎 탈놀이
- 🔎 민화
조선 후기에 서민 문화가 발달한 까닭을 경제와 교육의 변화로 설명해 보자.
성취기준 [6사05-02] [9역12-02] [10한사1-02-04]
조선 후기에 서민 문화가 크게 발달한 까닭을 경제와 교육의 변화로 설명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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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공업이 발달해 돈을 번 서민이 늘어 문화를 즐길 여유가 생겼어요. 서당 교육이 넓어지고 한글이 퍼져 소설을 읽는 사람도 많아졌어요.
조선의 과학 기술
단서 — 이것을 보면
- 🔎 자격루
- 🔎 앙부일구
- 🔎 측우기
- 🔎 거중기
- 🔎 「대동여지도」
조선 전기와 후기의 과학 기술이 각각 무엇을 위해 발달했는지 비교해 보자.
성취기준 [6사05-01] [6사05-02] [9역11-01] [10한사1-02-04]
흥선 대원군과 개항
이 개념 문제 14개 풀기 →1863~1873 · 흥선 대원군과 개항
흥선 대원군의 개혁정치
흥선 대원군은 세도 가문을 몰아내고 비변사를 사실상 없앴으며, 서원을 47곳만 남기고 정리했다. 양반에게도 군포를 걷는 호포제를 실시하고 경복궁을 중건했다.
📍 경복궁(서울) · 👤 흥선 대원군, 고종
흥선 대원군의 개혁 가운데 백성의 환영을 받은 것과 원성을 산 것을 하나씩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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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 양반에게도 군포를 걷은 호포제, 폐단이 많던 서원의 정리, 환곡을 바로잡은 사창제. 원성: 경복궁을 다시 짓느라 원납전을 걷고 당백전을 찍어 물가가 크게 올랐어요.
움직이는 연표·지도로 보는 개항까지의 길
단순 지도 — 해안선과 나라의 경계는 대략의 모양이에요. 네모는 도읍, 동그라미는 사건이에요(색 = 주제).
해 볼 것 · 연표 띠를 1866 → 1871 → 1876 → 1883년으로 끌어 보세요. 강화도에 점이 세 번 생겨요. 아래 보라색 줄에서 같은 때 일본의 변화도 함께 봐요.
1866 · 흥선 대원군과 개항
병인양요전쟁·외교
천주교 탄압(병인박해)을 구실로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략했다. 양헌수 부대가 정족산성에서 물리쳤으나, 프랑스군은 외규장각 도서를 빼앗아 갔다.
📍 강화도 · 👤 흥선 대원군
1871 · 흥선 대원군과 개항
신미양요와 척화비전쟁·외교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미국 함대가 강화도를 침략했다. 어재연 부대가 광성보에서 끝까지 싸웠고, 흥선 대원군은 전국에 척화비를 세워 통상 수교 거부 의지를 밝혔다.
📍 강화도 · 👤 흥선 대원군
사료 · 1871
척화비
척화비 (1871)
서양 오랑캐가 쳐들어오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
흥선 대원군이 척화비를 세운 까닭을 병인양요·신미양요와 관련지어 설명해 보자.
흥선 대원군의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은 서양의 침략을 막아 냈다는 평가와, 근대화를 늦추었다는 평가를 함께 받아요. 두 평가의 근거를 하나씩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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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아 냈다: 프랑스·미국 군대를 물리쳐 나라를 지키고 서양의 침략에 맞서는 의지를 보여 주었어요. 늦추었다: 서양의 앞선 기술과 제도를 받아들일 기회를 놓쳐, 뒤에 준비 없이 불평등 조약을 맺게 되었어요.
1876 · 흥선 대원군과 개항
강화도 조약 (개항)정치 · 경제·교류
운요호 사건을 구실로 일본이 개항을 요구해 강화도 조약을 맺었다. 부산·원산·인천을 열었고, 일본에 해안 측량권과 치외 법권을 인정한 불평등 조약이었다.
📍 강화도, 부산항(부산), 원산, 제물포(인천) · 👤 고종
사료 · 1876
강화도 조약 제1관
조일 수호 조규 (1876)
조선국은 자주 국가로서 일본국과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이 조항은 겉으로 평등해 보이지만, 강화도 조약의 다른 조항과 함께 보면 어떤 점이 불평등했을까?
강화도 조약 제1관은 조선과 일본이 평등하다고 했어요. 그런데도 불평등 조약이라고 하는 까닭을 다른 조항에서 찾아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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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해안 측량권과 치외 법권(일본인이 조선에서 죄를 지어도 일본 법으로 재판)을 인정했어요. 일본만 조선에서 특권을 누리고 조선은 같은 권리를 얻지 못했어요.
1883~1899 · 개화 정책과 갑신정변
근대 문물의 수용문화·사상 · 경제·교류
박문국에서 『한성순보』를 펴내고(1883), 우정총국(1884)·광혜원(1885)이 세워졌으며 경복궁에 전등이 들어왔다(1887). 1899년 전차와 경인선 철도가 개통되어 사람들의 생활이 크게 바뀌었다.
📍 한양(지금의 서울), 제물포(인천)
일본은 1854년 미국의 압력으로 문을 열었고, 1876년에는 조선에 문을 열게 했어요. 그 사이 일본에서 일어난 일과 조선에서 일어난 일을 견주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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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메이지 유신(1868)으로 서양식 근대화 개혁을 서둘렀어요. 같은 때 조선은 흥선 대원군이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폈어요. 근대화에 앞선 일본은 서양이 자신에게 한 방식(함포 외교)을 조선에 그대로 썼어요.
- 중농학파 = 토지 개혁(유형원·이익·정약용), 중상학파 = 상공업·청 문물(박지원·박제가·홍대용).
- 김홍도 = 서민의 일상, 신윤복 = 양반·여인의 풍류, 정선 = 진경 산수화.
- 병인양요(1866) = 프랑스, 정족산성(양헌수), 외규장각 도서 약탈. 신미양요(1871) = 미국, 광성보(어재연) → 척화비.
- 강화도 조약(1876)은 운요호 사건이 구실. 부산·원산·인천 개항, 해안 측량권·치외 법권.
한 장 요약
한 장 요약
- 실학: 중농학파(토지 개혁, 유형원·이익·정약용)와 중상학파(상공업·북학, 박지원·박제가) / 국학(『동사강목』, 『발해고』, 『택리지』, 「대동여지도」).
- 서민 문화: 판소리·탈놀이·한글 소설·사설시조·풍속화(김홍도·신윤복)·진경 산수화(정선)·민화.
- 흥선 대원군(1863~1873): 세도 가문 축출, 비변사 폐지, 서원 정리, 호포제, 사창제, 경복궁 중건(당백전).
- 통상 수교 거부: 병인양요(1866, 프랑스) → 신미양요(1871, 미국) → 척화비.
- 운요호 사건 → 강화도 조약(1876): 부산·원산·인천 개항, 치외 법권·해안 측량권의 불평등 조약 → 근대 문물 수용.
교육과정 · 2022 개정 중학교 역사② 대단원 5 '조선 사회의 변동' · [9역12-03] 조선 후기 문화의 새로운 경향과 개항 · 역사 DB(content/history) 중학 층 · 개항 이후는 대단원 6으로 이어짐
Practice
문제 풀기 30문제
『열하일기』를 써서 청의 앞선 문물을 배우자고 주장한 실학자는?
10리마다 눈금을 표시하고 22첩으로 나누어 접게 만든 전국 지도는?
「씨름」, 「서당」처럼 서민의 일상을 그린 풍속화가는?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략해 외규장각 도서를 빼앗아 간 사건은?
흥선 대원군이 전국에 척화비를 세운 해(신미양요가 일어난 해)를 쓰세요.
답년강화도 조약으로 연 항구가 아닌 것은?
중농학파 실학자들이 주장한 것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정약용이 쓴 책으로, 지방관(목민관)이 지켜야 할 도리를 적은 것은?
조선 후기 우리 역사·지리를 연구한 국학의 성과가 아닌 것은?
조선 후기 서민 문화가 아닌 것은?
우리 자연을 직접 보고 그린 진경 산수화로 유명한 화가는?
판소리와 탈놀이가 양반을 다룬 방식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흥선 대원군의 정책이 아닌 것은?
신미양요를 일으킨 나라는?
다음 일을 일어난 순서대로 바르게 늘어놓은 것은?
강화도 조약의 구실이 된 사건은?
다음 질문을 던진 학자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 수령이 백성을 위해 있는 것인가, 백성이 수령을 위해 태어난 것인가?
실학이 등장한 배경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단서: 조선 후기에는 『춘향전』을 빌려주는 세책점과 소설을 읽어 주는 전기수가 생겼어요. 이 단서로 추론할 수 있는 것은?
다음 비문을 세운 인물의 정책으로 옳은 것은? — 서양 오랑캐가 쳐들어오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
강화도 조약이 불평등 조약인 까닭으로 옳은 것은?
흥선 대원군이 경복궁을 다시 지으며 생긴 문제로 옳은 것은?
중농학파와 중상학파의 주장을 하나씩 쓰고, 두 학파의 공통점을 쓰세요.
흥선 대원군의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긍정적 측면과 한계로 나누어 평가하세요.
다음 연표의 (가)~(라) 가운데 병인양요가 들어갈 시기는? — 1860 동학 창시 (가) 1863 흥선 대원군 집권 (나) 1871 신미양요 (다) 1876 강화도 조약 (라) 1883 『한성순보』 발행
강화도 조약을 맺기 전 일본에서 일어난 일로, 일본이 조선에 개항을 요구하는 배경이 된 것은?
조선 후기 진경 산수화와 풍속화가 등장한 것과 가장 관계 깊은 흐름은?
「대동여지도」가 만들어진 1861년 무렵 조선 안팎의 상황으로 옳은 것은?
다음 조항이 들어 있는 조약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 조선국은 자주 국가로서 일본국과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조선 후기 문화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만을 있는 대로 고른 것은? (ㄱ. 한글 소설과 사설시조가 유행했다. ㄴ. 팔만대장경을 새겼다. ㄷ. 정선이 진경 산수화를 그렸다. ㄹ. 판소리와 탈놀이가 성행했다.)
이 단원에 대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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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든 판
지금 기본 판2026 · Claude Opus 5.5 판
중학역사2#2026#claude-opus-5.5
- 만든 도구
- Claude
- 모델
- claude-opus-5-5
- 만든 날
- 2026-10-15
- 다시 읽고 확인
- 아직이에요
이 단원이 좋았다면
하트는 한 번, 별은 여러 번 누를 수 있어요.
친구에게 나누기
/notes/m-history-2/late-culture-open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