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T 05
조선 후기와 개항기의 변화
두 번의 큰 전쟁 뒤 조선은 다시 일어섰어요. 영조와 정조의 개혁, 장터와 판소리·풍속화로 활기를 띤 백성의 생활, 실학자들의 새로운 생각, 그리고 개항 뒤 들어온 전등과 전차까지 — 단서로 조선 후기와 개항기의 변화를 추론해요.
이 단원을 마치면
- 영조와 정조가 나라를 바로 세우려고 한 일(탕평, 규장각, 수원 화성)을 설명한다.
- 장시·서민 문화·실학에 관한 단서를 보고 조선 후기 사람들의 생활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추론한다.
- 흥선 대원군의 정치와 강화도 조약(개항) 뒤 들어온 근대 문물이 사람들의 생활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말한다.
영조와 정조, 나라를 다시 세우다
이 개념 문제 6개 풀기 →전쟁 뒤 조선의 신하들은 생각이 같은 사람끼리 무리(붕당)를 지어 서로 다투었어요. 영조는 어느 무리에도 치우치지 않고 인재를 고루 쓰는 탕평을 펼쳤고, 백성이 군대에 가는 대신 내던 옷감(군포)을 2필에서 1필로 줄여 주었어요. 손자인 정조도 탕평을 이어 갔어요.
1776~1800 · 체제 재정비와 탕평
정조의 개혁 정치정치 · 문화·사상
정조는 학문 연구 기관인 규장각을 두어 능력 있는 학자들을 키웠고, 신분이 낮아도 재능 있는 사람을 썼어요. 수원에 화성을 쌓아 새로운 도시를 만들었어요.
📍 한양(지금의 서울) · 👤 정조
1794~1796 · 체제 재정비와 탕평
수원 화성 건설문화·사상 · 정치
정조는 수원에 화성을 쌓았어요. 정약용이 만든 거중기 덕분에 무거운 돌을 쉽게 들어 올려 공사 기간을 크게 줄였어요.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 유산이에요.
📍 수원 화성(수원) · 👤 정조, 정약용
움직이는 연표와 지도로 조선 후기와 개항기 둘러보기
단순 지도 — 해안선과 나라의 경계는 대략의 모양이에요. 네모는 도읍, 동그라미는 사건이에요(색 = 주제).
해 볼 것 · 연표 띠를 끌어 보세요. 1794년 무렵 수원에, 1876년 무렵 강화도와 부산·원산·인천에 점이 생겨요. 흘려 보기를 '느리게'로 두면 사건 이름을 천천히 읽을 수 있어요.
수원 화성을 쌓을 때 정조는 일한 사람들에게 품삯(임금)을 주었어요. 거중기를 쓰고 품삯을 준 것은 백성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을지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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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중기 덕분에 무거운 돌을 쉽게 들어 올려 백성의 힘든 일이 줄고 공사 기간도 크게 짧아졌어요. 품삯을 받은 백성은 억지로 일하는 대신 돈을 벌 수 있었어요.
달라진 백성의 생활과 새로운 생각
이 개념 문제 10개 풀기 →장시와 상업의 발달
단서 — 이것을 보면
- 🔎 김홍도의 「장터길」
- 🔎 보부상의 짐
- 🔎 상평통보
- 🔎 모내기 그림
5일마다 열리는 장에 사람들이 모이면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지 상상해 보세요.
성취기준 [6사05-02] [9역12-03] [10한사1-01-04]
5일마다 열리는 장날에는 물건을 사고팔 뿐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모였어요. 장터에서 일어났을 일을 두 가지 상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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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사는 친척과 이웃을 만나 소식을 주고받았고, 씨름이나 탈놀이 같은 놀이판이 벌어지기도 했어요. 보부상에게서 다른 고장의 물건과 소식을 들을 수도 있었어요.
조선 후기 서민 문화
단서 — 이것을 보면
- 🔎 김홍도의 「씨름」
- 🔎 신윤복의 「단오풍정」
- 🔎 판소리 「춘향가」
- 🔎 탈놀이
- 🔎 민화
탈놀이에서 양반을 놀리며 웃은 것을 보면, 백성들은 양반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성취기준 [6사05-02] [9역12-02] [10한사1-02-04]
탈놀이에서 백성들은 탈을 쓰고 양반의 잘못을 흉내 내며 놀렸어요. 왜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탈을 썼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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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이 높은 양반을 대놓고 비판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에요. 탈을 쓰면 누가 말했는지 감출 수 있어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있었어요.
실학 — 실생활에 쓰이는 학문
단서 — 이것을 보면
- 🔎 정약용의 거중기
- 🔎 『목민심서』
- 🔎 박지원의 『열하일기』
- 🔎 『북학의』
거중기를 만든 것을 보면 정약용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을까요?
성취기준 [6사05-02] [9역12-02] [10한사1-02-04]
1861 · 세도 정치와 사회 변동
「대동여지도」문화·사상
김정호가 우리나라 땅을 자세히 그린 지도 「대동여지도」를 만들었어요. 22권으로 나누어 접어 들고 다닐 수 있게 했고, 목판으로 찍어 여러 사람이 볼 수 있게 했어요.
👤 김정호
「대동여지도」는 22권으로 나누어 접을 수 있고, 목판으로 여러 장을 찍을 수 있었어요. 김정호가 이렇게 만든 까닭을 지도를 쓰는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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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으로 크게 만들면 펼치기도 들고 다니기도 어려워요. 접어서 필요한 부분만 꺼내 볼 수 있게 했고, 목판으로 찍으면 여러 사람이 같은 지도를 가질 수 있었어요.
정약용이 만든 것으로, 도르래를 이용해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린 기구는?
정조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왕비 집안 몇몇이 권력을 차지해(세도 정치) 세금을 함부로 걷었어요. 견디다 못한 백성들은 곳곳에서 들고일어났어요.
문을 연 조선, 새로운 문물
이 개념 문제 8개 풀기 →1863~1873 · 흥선 대원군과 개항
흥선 대원군의 개혁정치
어린 고종을 대신해 아버지 흥선 대원군이 나라를 다스렸어요. 왕실의 힘을 키우려 경복궁을 다시 짓고, 양반도 세금을 내게 했어요.
📍 경복궁(서울) · 👤 흥선 대원군, 고종
흥선 대원군은 서양의 배가 쳐들어오자 맞서 싸우고, 서양과 사귀지 않겠다는 비석(척화비)을 전국에 세웠어요. 그러나 고종이 직접 나라를 다스리게 된 뒤 조선은 일본과 조약을 맺고 문을 열었어요.
1876 · 흥선 대원군과 개항
강화도 조약 (개항)정치 · 경제·교류
1876년 조선은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맺고 항구를 열었어요(개항). 이때부터 다른 나라와 활발히 오가며 새로운 물건과 문물이 들어왔어요.
📍 강화도, 부산항(부산), 원산, 제물포(인천) · 👤 고종
강화도 조약에는 일본 사람이 조선에서 죄를 지어도 조선이 아니라 일본의 법으로 재판한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이것이 왜 조선에 불리했는지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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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람이 조선에서 잘못을 해도 조선이 벌을 줄 수 없어서, 조선 사람이 피해를 입어도 제대로 보호받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강화도 조약은 공평하지 않은(불평등한) 조약이에요.
1883~1899 · 개화 정책과 갑신정변
근대 문물의 수용문화·사상 · 경제·교류
개항 뒤 신문(한성순보), 우체국(우정총국), 서양식 병원(광혜원)이 생기고, 경복궁에 전등이 켜졌어요. 1899년에는 서울에 전차가 다니고 경인선 기차가 달리기 시작했어요.
📍 한양(지금의 서울), 제물포(인천)
개항기 근대 문물
단서 — 이것을 보면
- 🔎 『한성순보』
- 🔎 우정총국 건물
- 🔎 광혜원
- 🔎 경복궁의 전등
- 🔎 전차
- 🔎 경인선 기차
전차와 기차가 다니기 시작한 뒤 사람들의 생활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성취기준 [6사05-02] [9역13-01] [10한사1-01-04]
1899년 서울에 전차가 다니기 시작했어요. 전차가 생긴 뒤 사람들의 생활은 어떻게 달라졌을지 좋은 점과 걱정되는 점을 하나씩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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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점: 먼 곳까지 빨리 갈 수 있어 사람들이 오가는 범위가 넓어졌어요. 걱정되는 점: 전차에 사람이 다치는 사고가 나기도 했고, 처음 보는 기계를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 탕평을 처음 크게 펼친 임금은 영조, 규장각을 두고 수원 화성을 쌓은 임금은 정조예요.
- 거중기는 정약용, 대동여지도는 김정호, 동의보감은 허준이에요.
- 흥선 대원군은 고종의 아버지예요. 서양과 사귀지 않으려 했지만,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조선은 문을 열었어요(개항).
- 개항 뒤 들어온 것: 신문, 우체국, 서양식 병원, 전등, 전차, 기차.
한 장 요약
한 장 요약
- 영조는 탕평으로 인재를 고루 쓰고 군포를 줄였으며, 정조는 규장각을 두고 수원 화성을 쌓았어요(거중기).
- 조선 후기에는 5일장(장시)이 퍼지고 상평통보가 쓰였으며, 모내기법으로 농사가 나아졌어요.
- 판소리·탈놀이·풍속화·한글 소설 같은 서민 문화가 꽃피었어요.
- 실학자들은 백성의 생활에 도움이 되는 학문을 연구했어요(정약용, 박지원).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만들었어요.
- 흥선 대원군이 나라를 다스린 뒤,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조선은 문을 열었고(개항) 신문·전등·전차·기차 같은 근대 문물이 들어왔어요.
교육과정 · 2022 개정 초등 사회 5-2 역사 영역 · [6사05-02] 조선 후기 사회의 변화와 개항 이후의 변화 탐구 · 역사 DB(content/history)에서 초등 층으로 불러 씀
Practice
문제 풀기 24문제
학문 연구 기관인 규장각을 두고 수원에 화성을 쌓은 임금은?
수원 화성을 쌓을 때 무거운 돌을 쉽게 들어 올리도록 정약용이 만든 기구는?
조선 후기 전국 곳곳에서 5일마다 열린 시장을 무엇이라 할까요?
소리꾼이 북 장단에 맞추어 이야기를 노래와 말로 들려주는 조선 후기의 공연은?
우리나라 땅을 자세히 그린 「대동여지도」를 만든 사람은?
조선이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맺고 항구를 연(개항) 해를 쓰세요.
답년어린 고종을 대신해 나라를 다스리며 경복궁을 다시 지은 고종의 아버지는?
개항 뒤 들어온 근대 문물이 아닌 것은?
영조가 어느 무리에도 치우치지 않고 인재를 고루 쓴 정치를 무엇이라 할까요?
정조의 개혁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수원 화성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조선 후기 장시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던 상인은?
조선 후기 전국에서 널리 쓰인 쇠로 만든 돈의 이름을 쓰세요. (○○통보)
답씨름하는 모습처럼 백성의 생활을 그린 풍속화로 유명한 화가는?
조선 후기 백성의 생활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것을 연구한 학문은?
흥선 대원군이 한 일로 옳은 것은?
다음 일을 일어난 순서대로 바르게 늘어놓은 것은?
1899년 서울에서 처음 다니기 시작한 교통수단은?
단서: 조선 후기 탈놀이에서는 양반이 잘난 척하다 하인에게 놀림을 당하는 장면이 나와요. 이 단서로 추론할 수 있는 것은?
단서: 조선 후기에는 『홍길동전』, 『춘향전』 같은 한글 소설을 빌려주는 가게가 생기고, 소설을 읽어 주는 사람도 나타났어요. 이 단서로 알 수 있는 것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단서: 1887년 경복궁에 처음 전등이 켜지자, 사람들은 물을 끌어 올려 불을 밝힌다며 '물불'이라 불렀어요. 이 단서로 추론할 수 있는 것은?
단서: 정조는 화성을 쌓은 과정을 날마다 자세히 기록하게 해 『화성성역의궤』라는 책으로 남겼어요. 이 단서로 알 수 있는 것은?
조선 후기 백성의 생활이 달라진 모습을 장시, 서민 문화, 실학 가운데 두 가지를 골라 써 보세요.
개항 뒤 들어온 근대 문물 가운데 하나를 골라, 그것이 사람들의 생활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써 보세요.
이 단원에 대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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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든 판
지금 기본 판2026 · Claude Opus 5.5 판
초등한국사#2026#claude-opus-5.5
- 만든 도구
- Claude
- 모델
- claude-opus-5-5
- 만든 날
- 2026-10-15
- 다시 읽고 확인
- 아직이에요
이 단원이 좋았다면
하트는 한 번, 별은 여러 번 누를 수 있어요.
친구에게 나누기
/notes/e-korean-history/late-joseon-open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