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T 2-2
토지 제도와 수취 체제, 경제 활동의 변화 탐구
지배층은 무엇으로 먹고살았고, 백성은 무엇을 바쳤을까요? 녹읍에서 관료전·전시과·과전법·직전법을 거쳐 수조권이 사라지기까지, 조세·공납·역에서 대동법·균역법까지, 시전과 벽란도에서 장시와 사상까지를 시대를 가로질러 비교해요.
이 단원을 마치면
- 고대에서 조선까지 토지 제도의 변화를 '수조권 지급'과 '지배층의 경제 기반'으로 비교한다.
- 조세·공납·역의 수취 체제가 조선 후기에 어떻게 토지 중심으로 바뀌었는지 설명한다.
- 시대별 상업과 화폐, 대외 무역의 특징을 비교하고 조선 후기 상품 화폐 경제의 의미를 평가한다.
- 민정 문서, 녹읍 폐지 사료 등 경제 사료를 읽고 시기를 판별한다.
토지 제도 — 누가 무엇을 받았나
이 개념 문제 14개 풀기 →땅과 백성 — 녹읍에서 정전까지
민정 문서를 통해 신라가 백성을 어떻게 파악하고 세금을 매겼는지 설명해 보자.
성취기준 [9역09-02] [10한사1-02-02]
사료 · 689
신문왕, 녹읍을 없애다
『삼국사기』 신라 본기, 신문왕 9년
왕이 명을 내려 안팎 관리의 녹읍을 없애고, 해마다 등급에 따라 곡식(조)을 내려 주는 것을 정해진 법으로 삼았다.
下敎 罷內外官祿邑 逐年賜租有差 以爲恒式
녹읍 폐지와 경덕왕 때의 녹읍 부활(757)을 견주어 신라 왕권의 변화를 설명해 보자.
녹읍은 조세와 노동력까지, 관료전은 조세만 거둘 수 있었어요. 신문왕이 녹읍을 없애고 관료전을 준 것이 왕권 강화로 이어지는 까닭을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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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읍을 가진 귀족은 그 지역 백성의 노동력까지 부려 사실상 그 땅의 주인처럼 세력을 키울 수 있었어요. 관료전은 조세만 거두게 해 귀족이 백성을 직접 지배하는 힘을 줄이고, 관리의 생활이 국가에서 받는 몫에 기대게 만들었어요.
두 흐름으로 비교하는 토지 제도
흐름 · 중학부터
땅과 세금은 어떻게 바뀌었나
나라는 관리와 농민에게 땅과 세금을 어떻게 나누었고, 그것은 왜 바뀌었을까?
- 940역분전 — 공을 세운 사람에게 땅을 나눔태조가 후삼국 통일에 공을 세운 사람에게 충성도와 인품에 따라 나누어 주었다.
- 998개정 전시과 — 관직 등급만으로인품을 빼고 관직의 높낮이에 따라 지급했다.
- 1076경정 전시과 — 현직 관리에게만땅이 모자라자 현재 관직에 있는 사람에게만 주었다.
- 1271녹과전 — 원 간섭기 관리 녹봉을 보충전시과가 무너져 관리에게 줄 녹봉이 모자라자 경기 지역 땅을 나누어 주었다.
역분전에서 전시과(시정·개정·경정)를 거쳐 과전법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수조권을 누구에게 얼마나 주는가'의 문제였다. 수조권 분급이 세습화·사유화될 때마다 국가 재정과 농민 생활이 흔들렸고, 이는 지배 세력 교체의 경제적 배경이 되었다.
성취기준 [10한사1-02-02]
흐름 · 중학부터
세금 제도는 어떻게 바뀌었나
조선은 땅·특산물·군역의 세금을 어떻게 걷었고, 왜 고쳤을까?
- 1470관수 관급제 — 나라가 거두어 지급관리의 과도한 수탈을 막으려 성종 때 국가가 세금을 거두어 관리에게 나누어 주었다.
- 1635영정법 — 토지세를 1결당 4~6두로 고정풍흉에 관계없이 토지 1결당 쌀 4~6두로 정했다.
과전법 → 직전법 → 관수 관급제로 수조권 지급이 줄어들어 16세기에는 사라졌고, 조선 후기 수취 체제는 '사람(호) 단위에서 토지 단위로' 옮겨 갔다. 그러나 부가세와 수령·향리의 수탈로 개혁 효과가 줄었다.
성취기준 [9역12-01] [10한사1-02-02]
해 볼 것 · 위 흐름(고려)의 끝 단계와 아래 흐름(조선)의 첫 단계가 모두 과전법(1391)이에요. 두 흐름을 차례로 눌러 보세요.
땅과 세금
전시과에서 과전법까지의 변화를 지배 세력의 변화와 관련지어 설명해 보자.
성취기준 [10한사1-02-02]
1391 · 개혁과 고려의 멸망
과전법경제·교류
1390년 공양왕 때 옛 토지 문서를 불태우고 1391년 과전법을 공포했다. 경기 지역에 한해 관리에게 등급별 수조권을 주었고, 세습은 원칙적으로 막았다.
👤 정도전, 이성계
| 제도 | 시기 | 받는 사람 | 특징 |
|---|---|---|---|
| 녹읍 | 신라 | 귀족 | 조세 + 노동력 |
| 관료전 | 신문왕(687) | 관료 | 조세만 |
| 전시과 | 고려(976~1076) | 관리(전·현직 → 현직) | 전지와 시지의 수조권 |
| 과전법 | 1391 | 전·현직 관리 | 경기 지역 한정 |
| 직전법 | 세조(1466) | 현직 관리 | 수탈 심화 |
| 관수 관급제 | 성종(1470) | 국가가 걷어 지급 | 16세기 중엽 수조권 소멸 |
16세기 중엽 수조권 지급이 사라지자 양반 관료는 무엇으로 경제 기반을 삼았나요? 그 결과 농민의 처지는 어떻게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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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은 땅을 직접 소유하고 늘리는 지주가 되었고(지주 전호제), 땅이 없는 농민은 남의 땅을 빌려 짓는 소작농(전호)으로 수확의 절반 정도를 지대로 바쳤어요.
수취 체제 — 백성은 무엇을 바쳤나
이 개념 문제 7개 풀기 →세금 제도를 고치다 — 영정법 · 대동법 · 균역법
조선 후기 수취 체제 개편이 '사람에서 토지로' 바뀐 흐름을 세 제도로 정리해 보자.
성취기준 [9역12-01] [10한사1-01-04] [10한사1-02-02]
1608~1708 · 왜란과 호란
대동법경제·교류
방납의 폐단을 줄이고 땅이 많은 지주의 부담을 늘렸다. 관청에 물품을 대는 공인이 나타나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는 계기가 되었다. 선혜청이 담당했다.
1750 · 체제 재정비와 탕평
균역법경제·교류
일부 상류층에게 선무군관포를 걷어 부족분을 보충했다. 그러나 군역의 근본 문제(양반의 면역)는 해결되지 않았고, 군포 부담은 다시 농민에게 전가되었다.
👤 영조
조선 후기 수취 체제 개혁은 '세금의 기준을 사람(호)에서 토지로 옮겼다'고 정리돼요. 대동법과 균역법(결작)을 예로 설명하고, 이 변화가 누구에게 유리했는지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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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법은 집집마다 바치던 공납을 땅 1결당 쌀 12두로 바꾸었고, 균역법은 줄어든 군포를 땅 1결당 결작 2두로 보충했어요. 땅이 많은 지주의 부담이 늘고 땅이 적거나 없는 농민의 부담은 줄었어요.
1862 · 세도 정치와 사회 변동
임술 농민 봉기사회
조정은 안핵사를 보내 수습하고 삼정이정청을 설치해 삼정의 문란을 바로잡으려 했으나 효과가 적었다. 농민들의 사회 의식이 성장했음을 보여 주는 봉기였다.
📍 진주
상업 · 화폐 · 교역
이 개념 문제 9개 풀기 →남북국의 국제 교류
단서 — 이것을 보면
- 🔎 청해진 유적
- 🔎 울산항에 온 아라비아 상인 기록
- 🔎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 🔎 발해의 일본도·신라도
남북국 시대 교류의 길을 바닷길과 육로로 나누어 정리해 보자.
성취기준 [6사04-02] [9역09-03] [10한사1-02-01]
개경의 시장과 벽란도
단서 — 이것을 보면
- 🔎 개경 거리의 시전
- 🔎 벽란도에 드나든 외국 배
- 🔎 은병과 해동통보 같은 고려의 돈
고려 정부의 화폐 정책이 성공하지 못한 까닭을 당시 경제 구조와 관련지어 설명해 보자.
성취기준 [6사04-03] [9역10-04]
장시와 상업의 발달
단서 — 이것을 보면
- 🔎 김홍도의 「장터길」
- 🔎 보부상의 짐
- 🔎 상평통보
- 🔎 모내기 그림
조선 후기 상품 화폐 경제의 발달이 신분제 동요와 어떻게 이어졌는지 설명해 보자.
성취기준 [6사05-02] [9역12-03] [10한사1-01-04]
고려는 건원중보·해동통보·은병을 만들었지만 널리 쓰이지 않았어요. 반면 조선 후기 상평통보는 전국에 퍼졌어요. 그 차이를 경제 구조로 설명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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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자급자족적인 농업 경제여서 사람들이 곡식과 삼베로 충분히 거래했고, 화폐 발행은 국가 재정을 위한 정책에 가까웠어요. 조선 후기에는 장시가 전국에 퍼지고 대동법으로 세금 일부를 돈으로 내며 상품 거래가 늘어 화폐가 필요해졌어요.
| 통일 신라 | 고려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 |
|---|---|---|---|---|
| 대외 교역 | 당·일본, 장보고(청해진) | 벽란도(송·아라비아) | 사신 따라 공무역 | 만상·내상의 사무역 |
| 국내 상업 | 경주 시장 | 개경 시전 | 시전(육의전), 장시 억제 | 장시 1천여 곳, 사상 성장 |
| 화폐 | 거의 없음 | 건원중보·은병 | 저화·조선통보 | 상평통보 전국 유통 |
조선 후기 상품 화폐 경제의 발달이 신분 질서를 흔든 과정을 '부유한 농민·상인'의 입장에서 설명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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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법과 상품 작물, 장시와 사상 활동으로 돈을 번 농민·상인은 공명첩을 사거나 족보를 사들여 양반이 되었어요. 돈이 신분 상승의 수단이 되면서 혈통 중심의 신분 질서가 흔들렸어요.
18세기 조선의 선대제 수공업과 덕대의 광산 경영을 영국의 산업 혁명과 견주어, 조선 후기 경제 변화의 한계를 하나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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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도 상인이 자본을 대고 수공업자가 생산하는 방식이 나타났지만, 기계와 공장을 이용한 대량 생산으로 나아가지 못했어요. 국가의 상업 통제와 신분 질서, 낮은 기술 투자가 한계로 작용했어요.
- 녹읍(조세+노동력) ↔ 관료전(조세만). 신문왕 687 관료전 지급, 689 녹읍 폐지, 경덕왕 757 녹읍 부활.
- 전시과: 시정(976, 관품+인품) → 개정(998, 관품만) → 경정(1076, 현직만).
- 과전법(1391, 전·현직, 경기) → 직전법(1466, 현직) → 관수 관급제(1470).
- 영정법 = 전세(1결 4~6두), 대동법 = 공납(1결 12두), 균역법 = 군역(군포 1필, 결작 2두).
- 고려 화폐 = 건원중보·해동통보·은병(활구), 조선 후기 = 상평통보.
한 장 요약
한 장 요약
- 토지 제도의 핵심은 수조권: 녹읍 → 관료전(신문왕) → 녹읍 부활(경덕왕) → 전시과(고려) → 과전법(1391) → 직전법(1466) → 관수 관급제(1470) → 16세기 수조권 소멸과 지주 전호제 확대.
- 수취 체제는 조세·공납·역에서 조선 후기 영정법·대동법·균역법으로 '사람에서 토지로' 옮겨 갔지만, 부가세와 수탈로 19세기 삼정의 문란이 일어났어요.
- 교역: 통일 신라의 장보고와 청해진, 고려의 벽란도, 조선 후기 만상·내상의 사무역.
- 상업: 관 주도의 시전에서 조선 후기 장시·사상·공인의 성장으로, 화폐는 고려에서 실패했으나 조선 후기 상평통보가 널리 퍼졌어요.
- 상품 화폐 경제의 발달은 신분제를 흔들었지만 산업 혁명 같은 생산 방식의 전환으로는 이어지지 못했어요.
교육과정 · 2022 개정 고등학교 한국사1 '근대 이전 한국사의 탐구' · [10한사1-02-02] 근대 이전 경제 체제와 경제 활동의 변화 (성취기준 번호는 단원 차례로 붙였고 교육과정 원문 대조 전) · 역사 DB(content/history) 고등 층
Practice
문제 풀기 30문제
신라 신문왕이 귀족 세력을 약화하려고 없앤 것은?
고려에서 관품과 인품을 함께 따져 토지를 준 시정 전시과가 시작된 해를 쓰세요.
답년조선 세조 때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권을 준 제도는?
공납을 땅 넓이에 따라 쌀·베·돈으로 내게 한 제도는?
고려 때 개경 가까이에서 송·아라비아 상인이 드나든 국제 무역항은?
조선 후기 전국에 널리 유통된 화폐는?
녹읍과 관료전을 비교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고려 전시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전시과의 변천을 순서대로 바르게 늘어놓은 것은?
과전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대동법 실시로 나타난 상인은?
균역법으로 줄어든 재정을 보충한 방법이 아닌 것은?
조선 후기 수취 체제 개혁의 공통된 방향은?
통일 신라 때 청해진을 세워 해상 무역을 이끈 사람은?
고려의 상업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조선 후기 의주를 근거로 청과의 무역을 이끈 사상은?
다음 명령을 내린 왕 때의 사실로 옳은 것은? — 안팎 관리의 녹읍을 없애고, 해마다 등급에 따라 곡식을 내려 주는 것을 정해진 법으로 삼았다.
신라 민정 문서(촌락 문서)로 알 수 있는 사실로 옳은 것은?
16세기 중엽 수조권 지급이 사라진 결과로 가장 알맞은 것은?
다음 제도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 집집마다 특산물을 바치게 하던 것을 땅 1결당 쌀 12두로 바꾸고, 선혜청이 맡았다.
19세기 삼정의 문란에 해당하지 않는 것은?
고려에서 화폐가 널리 쓰이지 못한 까닭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녹읍 → 관료전 → 전시과 → 과전법 → 직전법의 변화를 '왕권(국가)과 관리(귀족)의 관계'로 설명하세요.
조선 후기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한 배경 두 가지와 그것이 신분제에 미친 영향을 쓰세요.
다음 연표의 (가)~(라) 가운데 과전법이 들어갈 시기는? — 976 시정 전시과 (가) 1076 경정 전시과 (나) 1366 전민변정도감 (다) 1466 직전법 (라) 1608 대동법
대동법과 균역법이 공통적으로 지주에게 부담을 지운 방식은?
조선 후기 광산을 경영한 전문 경영인과, 상인이 원료와 자금을 대고 수공업자가 생산한 방식을 바르게 짝지은 것은?
다음 일을 일어난 순서대로 놓은 것은? (가) 관수 관급제 (나) 녹읍 부활 (다) 경정 전시과 (라) 과전법
밑줄 친 '이 제도'가 시행된 시기의 사실로 옳은 것은? — 이 제도는 경기 지역의 토지에 한해 전·현직 관리에게 등급에 따라 수조권을 주었다. 공양왕 때 옛 토지 문서를 불태운 뒤 공포되었다.
(가), (나) 시기의 경제 모습으로 옳은 것은? — (가) 개경 근처 국제 무역항에 아라비아 상인까지 드나들었다. (나) 전국에 5일장이 퍼지고 보부상이 장을 돌았다.
이 단원에 대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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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든 판
지금 기본 판2026 · Claude Opus 5.5 판
고등한국사1#2026#claude-opus-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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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u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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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ude-opus-5-5
- 만든 날
- 202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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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이에요
이 단원이 좋았다면
하트는 한 번, 별은 여러 번 누를 수 있어요.
친구에게 나누기
/notes/h-korean-history-1/economy-inquiry